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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김씨표류기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여자, 죽고자 했지만 매번 실패하는 남자의 공감과 소통하는 이야기

한국에서는 봄가을에 각기 한 번씩 민방위 훈련을 하는데, 이 훈련은 주인공 남녀 김 씨에게 특별한 순간이 됩니다. 얼굴에 난 화상 자국 때문에 학창 시절 집단 따돌림을 심하게 당한 여자 김 씨는 왕따의 트라우마로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자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도 하루의 일과는 정해진 루틴처럼 매일 반복되는데 장롱에서 잠들어 아침해가 뜨면 신발을 신고 나름의 출근을 합니다. 인터넷 웹상에서 업데이트되는 젊은 여자들의 패션 사진을 긁어모아 자신의 미니홈피에 업로딩을 하며 거짓된 하루 일과를 공개하는 모습은 요즘의 많은 SNS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신은 신발, 입은 옷 그리고 생활까지 복사에서 자신의 것인 양 웹에 올리는 것이 하루의 주된 일과였습니다. 부모님 하고는 문자로만 소통하며,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니 집안에 온통 쓰레기가 쌓여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망원경으로 달을 보는 건데, 달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외로움이 없을 거라고 독백합니다. 그리고 서울 도시가 유일하게 달과 같아지는 때가 있는 게 그게 바로 민방위 훈련기간이라고 봅니다. 달처럼 아무도 없는 도로를 망원경으로 실 컷 보고 있던 여자 김 씨는 한강의 밤섬으로 렌즈를 돌리게 되고, 그곳에서 양복을 입은 어떤 남자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갔지만 이내 다시 그 남자를 찾게 되고, 후에는 관찰하다가 용기 내어 3년 만에 밖으로 나가 와인병에 편지 한 통을 넣어 남자 김 씨에게 보내게 됩니다. 한편 남자 김 씨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상황입니다. 자살시도했지만 우연찮게 휩쓸려 온 밤섬에서 119에 구조요청을 하나 장난 전화로 치부당해 버리고, 전여자친구는 매정하게 그의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그 와중에 인바운드 마케팅 콜이 들어오게 되는데 남자 김 씨의 말을 듣지 않고 마케팅 홍보만 잔뜩 하다가 결국 핸드폰의 전원마저 끊어져 버리고 맙니다. 삶을 이어갈 용기는 없었기에 밤섬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려고 하지만 배탈이 나서 용변을 보는 사이 활짝 핀 샐비어 꽃의 꿀을 따 먹으면서 연약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며 오열하게 됩니다. 마음을 고쳐 잡고 밤섬에서 적응해 보자라고 결심한 그는 어느 날 땅에 파 묻혀 있는 짜장라면 봉투 안의 뜯지 않은 수프를 발견하게 됩니다.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고 새들의 알로 프라이를 해 먹던 그는 그 순간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이게 되고 무인도에서 짜장면을 해 먹기 위해 기발한 행동들을 시작합니다.

자장면, 그것은 대체 무엇이길래 그에게 희망이 되었나.

한국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짜장면을 즐겨 먹습니다. 밥을 넣으면 짜장밥이 되고요 면을 넣으면 짜장면이 됩니다. 자장면은 서민 음식이라고 불릴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런 음식을 유명한 식품회사들이 자장라면으로 상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천 원이면 자장라면 한 개를 살 수가 있는데, 최근 오스카 시상식에 노미네이트가 된 영화 기생충에서 부잣집 마님이 한우 채끝살을 넣어 먹는 음식이 바로 자장라면입니다. 달콤하면서도 짭짜름한 그 음식은 극 중 남자 김 씨에게도 많은 추억과 함께한 음식이었습니다. 어릴 적 한 젓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고, 청년기에는 자주 갔던 단골 당구장에서 친구들이 권해도 무시하였으며, 직장 생활할 때에는 모두 다 자장면을 시킬 때 남자 김 씨는 울면을 시켰던 일들을 회상하며 눈물로 참회합니다. 쉽게 접할 수 있어 지금 아니어도 다른 때에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이제는 직접 만들지 않는 한은 먹을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바뀐 겁니다. 몇 날 며칠을 자장면 생각하면 하던 김 씨가 어느 날 번뜩 떠올리는 아이디어 하나는 바로 새똥이었습니다. 그의 안락한 침실인 부서진 오리배의 지붕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새똥을 모아서 땅에 심고 본인의 배설물로 거름을 주며 싹이 틔우기만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 김 씨는 그의 소망대로 밤섬에 종류별로 자장면을 배달시켜서 보냅니다. 혼자만 있던 밤섬에 찾아온 외부인 자장면 배달부는 헐벗은 채로 지내고 있는 그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지만 평소보다 열 배는 많은 팁을 받은 탓에 자장면을 놓고 떠나려 합니다. 남자는 소통하게 된 여자의 호의를 받지 못하고 자장면을 되돌려 보냄으로써 더 이상 단순한 음식이 아닌 희망이 되어버린 그만의 자장면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합니다. 왜 하필 하고많은 음식 중에 자장면일까 고민을 했습니다. 중화요리에는 올드보이의 군만두도 있고 새빨간 짬뽕도 있으며 볶음밥도 있는데, 그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자장면을 선택했을까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일약 스타덤으로 만들어 놓은 GOD의 어머니께 곡에서도 언급되는 이 음식은 어떻게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다가, 나라가 발전하고 경제가 윤택해지면서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은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혹자에게는 늘 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너무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게 되면서 어릴 때의 결핍을 해결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 격동의 변화는 고작 한 인간의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이고, 그렇기에 많은 국민이 비슷한 경험과 감정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즉 보편적인 주제가 돼버린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를 함께 견뎌 냈고 지금의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듯이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자 김 씨가 결국엔 모든 걸 이겨내고 세상밖으로 걸어 나와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내지 않을까 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자장라면이 쓰인 것 같습니다.

개봉당시보다 지금이 더 인기 많은 영화

배우 정재영과 정려원의 주연으로 2009년 개봉한 김 씨 표류기는 외국 팬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재평가받고 있는 영화 중에 하나입니다. 개봉 당시에는 저조한 흥행성적으로 대중의 무관심을 받았지만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된 이후로 소소하게 화제가 되더니 이제는 비운의 작품으로 불릴 만큼 홍보가 아쉬운 영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배우 두 명 모두 정 씨라서 정 씨 표류기로 바꾸자은 제안도 했다는 영화는 얼핏 저예산 독립영화처럼 보이지만 비 오는 날 찍은 장면에 비를 모두 삭제한다던가, 밤섬 주위로 보이는 모든 매경이 CG라던가, 극 중 남주인공 김 씨를 중심으로 하늘을 찍는 장면에서 하늘이 이상해 그래픽 작업을 하는 등 의외로 많은 예산이 쓰였는데 그 금액은 50억이었습니다. 손익분기점이 200만이었다고 하니 제작비용만 줄였어도 적자는 면하지 않을 수 있지 않았나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거금을 들여 CG를 제작하였으나 장르 특성상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고, 200만의 대중의 선택을 받으려면 주제가 보편적이어야 했는데 비주류의 문화를 담았기에 입소문도 잘 타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들인 투자금액만큼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하니 아직도 DVD를 구하려는 영화 팬들이 많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남녀 주인공 모두 김 씨이기에 김 씨 표류기가 된 영화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여자와 해고를 당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졌으며 빚까지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자살을 결심한 남자 주인공이 한강으로 뛰어들었으나 밤섬에 표류하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표류하는 밤섬은 한국의 자랑인 한강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무인도는 아니고 유인도입니다. 자살을 결심한 남자가 죽지 못하고 밤섬에 당도해 여러 번 구조요청 하지만 모두 어이없는 상황으로 실패로 끝나는 부분은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습니다. 각기 고립된 섬에서 물리적으로나 상징적으로 갇힌 생활을 하는 두 남녀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코믹하게 담았습니다. 영화는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웃기기만 한 설정은 아니며, 현실에서 구원받지 못하는 여린 존재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두 김 씨의 이야기는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난 인간의 존재가 의미가 있는지 고민을 던지는 국내 영화로 모의고사 언어영역에서 단골로 출제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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